수집

역사가 아주 오래된 친필 싸인이 담긴 이승만 대통령 우표 보셨나요?

신정 윤선생 2024. 12. 3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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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현아빠입니다.
 
오늘의 수집품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기념우표입니다.
예전에 정말 우표 많이 수집했었는데요. 요즘은 시들시들해집니다..ㅎㅎ 
이 작은 우표에 어떤 스토리가 있을지...^^
 
 
 
 
 
 
 
 
 
한미상호 방위조약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약칭: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953년 10월 1일 체결되고 1954년 11월 18일 조약 제34호로 발효된 대한민국미국 간의 상호방위조약이다.
 
 
 
 
배경
 
1953년 6월 17일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브릭스 대사와 회동을 하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는데, 당시는 미국 주도로 휴전 협정이 진행되고 있던 터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에 앞서 안정적인 국가 안보를 위해 미국에 상호 방위 조약을 요구했지만 이러한 이승만의 제안에 대해 미국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외교 및 안보 정책에 있어서 고립주의 전통이 강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미국과 양자 상호방위조약을 맺었던 나라는 필리핀 밖에 없었으며, 오늘날에도 양자 차원의 방위조약을 체결한 국가는 대한민국 이외에 영국, 일본, 필리핀 밖에 없다. 영국의 경우 미국의 핵 기술을 제공하기 위한 조약이었고, 일본은 재무장 금지와 맞물려 있는 조약이다. 필리핀의 경우, 필리핀 내 주둔하던 미군과 미군기지의 전략적인 가치 때문이었다.
 
 
미군 포로 송환에 비협조
 
당시 한국 전쟁에 대한 휴전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고, 이승만은 휴전 없이 북진통일을 원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러한 이승만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았으며, 휴전협정을 조속히 맺길 희망하고 있었다. 상호방위조약에 대한 진전이 극히 미미하자 이승만은 조약 체결에 대한 압박으로 6월 18일 약 2만 5천 명의 반공 포로들을 석방시켰다. 이러한 이승만의 급작스런 조치는 당시 진행되고 있었던 휴전협정 체결을 무산시킬 수도 있는 조치였는데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강력히 요구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승부수였다.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승만에게 '약속 파괴'라며 비판했고, 덜레스도 마찬가지 의도로 '이승만 제거'의 필요성을 검토하기도 했다.
 
 
정전협정 체결 후 조약 체결
 
1953년 8월 3일부터 협상에 들어가 1953년 8월 8일 그 최종안을 서울에서 가조인하였다. 이에 대해 이승만은 크게 만족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성립됨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조약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번영을 누릴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이번 공동조치는 외부 침략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함으로써 우리의 안보를 확보해 줄 것이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1953년 10월 1일 워싱턴 D.C. 에서에서 대한민국의 외무부장관 변영태미국의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의 서명을 거쳤지만, 이후 비준서 교환은 여의치 않았다. 전문과 6개 조로 이루어진 상호방위조약 가운데 제6조가 문제였다.
 
제6조는 "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 당사국에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지 시킬 수 있다"라고 돼 있었다. 이승만은 이 조항이 불만이었다. 이승만은 '무한정'을 요구했고, 미국 측은 미·필리핀상호방위조약에 유효기간을 정한 규정이 있음을 들어 반대 의견을 표시하여 비준이 지체되었으나, 결국 제6조는 원안대로 1954년 11월 18일에 발효되었다.

 

구글 이미지 참고

 
1954년 12월 25일
 
단기 4287년 11월 18일부터 실효를 발하게 된 한미상호방위협정체결을 영원히 기념하여 우표가 발행되었습니다.
 
 
영원히 기념?ㅎㅎ저는 이 말이 되게 특이합니다.
 
 
그 당시에는.. 영원히 기념할 만했을 겁니다.. 그 당시의 한국은... 뭐.. omg 이죠~
 
 
양국 원수와 양국의 국기가 디자인되었습니다.
 
 
발행량은 30만 장이고 액면가는 71 환입니다.
 
 
 
 
그렇다면 이 우표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1952년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여론을 의식하여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6.25 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공약을 선언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을 반대한다며 단독으로라도 북진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었죠
 
이렇게 휴전에 대해서 한국과 미국 간은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었고요
 
유엔사령부에서 검토한 에버레디 작전까지.. 혹시 들어보셨나요?
 
바로 이승만 대통령 제거 작전이라고 합니다.
 
물론 실행에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도대체 이승만 대통령은 이런 극단적인 갈등을 야기하면서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요??
 
바로 한미상호방위조약체결이 핵심 포인트입니다. 저도 관심을 갖게 된 이후부터 자세히 살펴봐왔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외교의 신인 것 같습니다..ㅎㅎ
 
 
배경을 먼저 살펴보자면 1953년 3월 스탈린이 사망하게 되면서 휴전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휴전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될수록 이승만 대통령은 더욱 거세게 반발하게 되는데요.
 
그 이유는 정전협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형선고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적과 손을 잡으라는 의미라고 얘기를 합니다.
 
공산국가의 재침략을 방지할 수 없다는 것이죠. 북한은 그 당시 남한보다 훨씬 잘살았고.. 재침략..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겁니다.
 
외세의 위협에서 벗어나 평화를 지속할 힘을 원했던 이승만대통령은 1953년 5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요구합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쉽게 말해
 
한국과 미국이 하나의 집단적 방위체제임을 인정하고 외부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지원한다
라는 내용입니다. 즉 동맹국이라는 거죠
 
하지만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미국의 부담을 최소화하려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계약은커녕 휴전에 협조하지 않으면 얻을 게 없을 거라고 한국을 압박합니다.
 
여기에 화난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 알리지도 않고 반공포로를 적극 석방합니다.
 
이렇게 미국과 의견 차이는 첨예화되고 어제 한편이었던 나라가 오늘의 적처럼 사이가 벌어지게 됩니다.
 
 
반공포로 석방 한 달 전에 미국은 휴전을 위해서 한미갈등 해결책으로 3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첫째 한미상호방위조약체결
둘째 주한미군철수
셋째 에버레디 작전
 
이 중 셋째 에버레디 작전을 정말 심도 있게 검토를 했다고 하는데 실행되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미 행정부가 에버레디 작전을 발동하지 않은 이유는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바턴 번스타인 교수 왈 :
이승만을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하고, 강력한 반공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국 생각을 바꾼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정전협정 협조를 조건으로 한 한미상호방위조약체결을 약속합니다.
 
 
한미동맹도 물 흐르듯 쉽게 체결된 게 아니었다는 점 아마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어쨌든 변함없는 사실은 6.25 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영웅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고 편안하게 지내고 있음을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낍니다.
 
 

구글 이미지 참조

 

한미상호방위조약 가 조인식을 지켜보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가운데 뒷줄)
가조인식에 서명을 하는 변영태 한국 외무부장관과 존 포스터 델레스 미 국무부 장관
 





 
 

 
이에 대해 이승만은 크게 만족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성립됨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조약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번영을 누릴 것이다.
 
 
이 말이 참... 감동입니다
 
 
 
 
 
그럼 이 엄청난 스토리텔링이 담긴 우표 봐보시겠습니다^^


 
 
 
 
 
 
 
 

 

 
한미상호방위협정체결 기념우표 위에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싸인이 있습니다.
 
그 순간을 영원히 기념하고자 이렇게 친필 싸인을 남긴 것이죠.
 
정확히 딱 70년 된 우표입니다!!
 
귀 해 보이나요?ㅎㅎㅎ
 
 

 
적은 액면가격의 우표 일지라도..
 
이 4장의 우표에 담긴 스토리는 어마어마합니다.
 
 
 

 

친필 사인을 하면서 어떤 생각에 잠기셨을지..
 
이승만 대통령 평가는 엇갈리지만
 
 
감히 제가 평가를 해보자면
 
잘한 것은 정말 잘했다고 평가해드리고 싶습니다.
 
 
 
 
토지개혁, 반공, 한미동맹
 
이 세 가지는.. 정말 ~~

 
 
 
 
 
 


 
 
 
미군철수(이승만대통령은 절대로 미군철수 하면 안 된다고 했었지만) 1년 만인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 발발,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점령되고, 한 달 만에 영남지역만 남기고 전국이 공산화되고, 낙동강 전선에서 목숨 걸고 방어한 결과 맥아더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북한군 몰아내고 서울 되찾고.. 근데 뜻하지 않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전선은 밀리고 밀고 고지전의 장기전이 되어버렸고...
 
그러다가 전쟁 사주한 소련의 스탈린이 죽고, 전쟁종식 선거 공약 내세운 미국 아이젠하워 후보가 대통령 당선되면서 휴전은 급물살을 타게 되지만 이승만은 이대로 휴전하고 유엔군 철수하면 한반도는 다시 전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면서 반공포로 석방의 카드까지 내밀면서 결국 미군주둔과 경제 무상원조를 미국으로부터 약속받고 휴전에 동의하였고, 그 결과 휴전협정 3개월 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주한미군이 주둔한 덕분에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대한민국은 전쟁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니 이때의 이승만의 협상과 주한미군의 주둔으로 평화를 지킨 위대한 업적은 절대로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엄청난 스토리텔링입니다!!!
 
 

감사합니다.